(먼저 이주일형제에게 감사합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처럼 중간중간에 사진을 올리려고 하니 여러가지로 어려움이 있었는데 주일형제가 도와 주셔서 이렇게 올릴 수 있습니다.)


2007년 7월 28일 아침 7시경에 목사님과 신영와 함께 스틸빌에 있는 스틸빌 침례교회로 출발했습니다. 선교를 갈 수있는 마음을 주시고 교회로부터 기도와 물질적인 후원을 받으며 갈 수 있음을 감사했습니다.
스틸빌 목사님의 인도로 배웅나온 스틸빌 성도들과 함께 주차장내에서 기도를 한후그곳 형제 자매들과 스틸빌 침례교회의 교회 밴을 타고8시가 조금 넘어서 세인트 루이스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스틸빌 침례교회는 작은 마을(도시인구 2077명)인데도 출석인 약 200명 가량인 선교 지향적인 교회입니다.


멕시코 선교 오리엔테이션 갔다가 봤던 벽에 붙여있는 글귀가 아직도 생각납니다.

‘Don’t cross border without Cross’

이번에도 이 교회서만 17명중에 9명이 참석했다. 작년에는 선교팀의 규모가 무척 컸었는데 이 교회에서 제일 많이 참석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중에 구체적으로 말하겠지만 이 교회에서 준비한 엄청난 양의 준비물에 정말 감탄했습니다.

선발대가 먼저 이른 아침 비행기로 엘파소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우리가 올때까지 여러가지 필요한 선교 용품들을 구입하고 우리를 기다릴 예정입니다. 우리가 함께한 후발대는 8명이였다. 밴을 주차하기 위해서 세인트 루이스 공항 근처에 있는 ‘Super Parking’을 찾는데 길을 잃어버려서 달리던 고속도로를 다시 달려와야 했습니다. 11시35분이 비행기 출발 시간인데 시간이 빠듯했다.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9시 50분을 넘어가는 시간이 였습니다. 다행히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서 금방 체크인을 했습니다. 우리 삼총사(목사님, 신영형제, 그리고 나)는 개인 짐을 하나로 줄이고 나머지 하나의 짐은 멕시코 VBS를 위한 준비물을 담은 것으로 자원했는데 체크인 할때 미국 형제들이 자기들 이름으로 테크인을 했습니다.

우리 삼총사는 그곳에서 방문 전도시 나누어줄 선물을 준비했는데 싸인펜, 볼펜, 그리고 크레파스였다. 싸인펜과 볼펜은 최대한 좋은 것으로 준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절대 값 싼 복음이 아니므로 선물도 거기에 걸맞게 준비하려고 발품을 팔며 한정된 예산 ($100정도, 삼총사가 부담하기로한 예산)으로 최대한 좋은 것으로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크레파스는 품질에 비해 가격이 너무 싸기(24색 한 박스에 25센트)에 욕심부리며 120박스를 사려다가 무게가 부담스러워 80박스만을 샀습니다. 그것도 무게가 상당했습니다. (멕시코에서 그것을 받으며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니 더 많이 가져 올걸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검색 라인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보안 직원들이 나의 가방을 몇번이나 다시 통과 시키더니 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테스터지를 꺼내어서 이리저리 찍어보더니 화학약품 반응이 있다고 하면서 뒤적거렸습니다. 순간 긴장했지만 그리 걱정은 되지 않았습니다. ‘선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무었이 문제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멕시코 선교를 가는 데 어린 아이들에게 줄 크레파스라고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보안 직원들은 밝은 표정으로 아침부터 놀랐다고 하며 크레파스를 가져가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역시 하나님은 든든한 빽이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할때 하나님은 특별히 은혜를 주시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습니다.

아틀란트로 이사간 성한이도 지난 여름에 아프리카로 의료선교를 가면서 많은 양의 의료물품을 가지고 갔는데 뉴욕공항에서 런던공항에서 파리공항에서 기착지마다 빠짐 없이 보안 검색에 걸렸다고 했습니다. 의료선교에 꼭 필요한 물품이라고 했더니 아무 제재 없이 무사히 통과했다고 했습니다. 아틀란타의 공항에서는 항공사 직원이 선교를 간다고 했더니 몇개의 짐을 무료로 붙여주기 까지 했다고 간증했습니다.

다음번에도 이런일이 생기게 되면 자신있게 그들에게 말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시게 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세인트 루이스 공항에서 비행기의 연착으로 기다리다 텍사스 달라스 공항으로 떠났습니다.오후 2시 55분에 달라스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대개 엘파소로 가기 위해 아메리칸 에어라인은 중간 기착지가 달라스이고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은 중간 기착지가 덴버입니다.


-달라스행 비행안에서 2007년 공식 선교 유니품을 입은 목사님과 신영형제-

달라스 공항에서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고 3시 30분에 엘파소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기내에 앉아서 기다리는데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데 무슨 말을 하는데 하나도 못 알아 듣겠습니다. 아뿔사… 이런일이… 그들은 간단한 것만 영어로 말했고 거의 모든 말을 스페인어로 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페인어 같은 말을 계속했습니다. 멕시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면 어김없이 스페인어를 썼습니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텍사스의 엘파소로 가지만 멕시코로 직행하는 비행기를 탄 기분이었습니다.



위의 사진에 는 약간의 구름이 보이지만 내가 앉은 반대편은 새까만 구름이 칠흙같이 덮여있고 번개가 번쩍 번쩍했습니다. 아마 10분만 늦었어도 제시간에 내리지 못했을 겁니다. 오후 5시에 엘파소에 내리니 ‘하나님 감사합니다’란 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공항 중앙으로 부터 오른쪽에 스페인어로 ‘Welcome to El Paso’ 인 ‘Bienvenidos a El Paso’가 보였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캐나다의 퀘백주를 여행할때 불어로 된 표시판들만 보던 불편했던 그때가 생각 났습니다. ‘오 주님 전 언어 배우는게 제일 약한데.’

공항밖으로 나오자마자 엄청난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창 밖이 잘보이지 않을 정도의 심한 소나기 였습니다. 오래되고 낡은 밴은 천정에서 물이 쉴사이 없이 여기저기서 떨어졌습니다. 지금까지 사는 동안 그렇게 천정에서 물이 많이 쏟아지는 차는 처음 타보았습니다. ‘하나님, 이제부터 시작인가요?’





아침에 스틸빌 떠나기전에 김병곤목사님이 사주신 간단한 아침만 먹고 오후 늦게까지 음료수만 먹고 있었는데 맥도날드에서 식사를 한다고 했습니다. 비가 너무 심하게 와서 밴안에서 잠시 기다리다가 시간이 없다는 말에 그냥 빗속으로 뛰었습니다.


-뛰어가는데 걸음을 멈추게한 우박들-


-우리가 탔던 밴-

밴 위쪽에 보이는 짐싣는 곳을 만드느라 천정에 구멍을 냈고 거기를 통해서 빗물이 흘려 내리는 거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내년에도 이놈을 타시고 멕시코로 가시게 되겠죠?
선발대를 만나기 위해 후아레즈에서 고아원을 운영하시는 분의 엘파소 집으로 이동했습니다. 그곳에서 짐을 싣고 멕시코를 향하여 오후5시 45분경 출발했습니다.



멀리서 멕시코 국기가 보입니다. 굉장히 큰 멕시코 국기인데 정말 멀리서도 보였고 가까이 갈 수록 계속 커졌습니다.


멕시코 국경은 가까와 지고 있습니다. 비장한 표정의 두분….



드디어 멕시코로 들어가는 다리의 입구입니다. 양쪽 차선에 자동차가 천천히 넘어가고 있습니다. 들어가는데에는 서행을했지만 그리 밀리지는 않았는데 교통이 혼잡해서 항상 시간을 넉넉히 두고 넘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기 보이는 입간판을 지나가면 멕시코입니다. 이곳 아래에 흐르는 멕시코와 미국을 가로 지르는 강은 ‘리오 그란데 (Rio Grande)’ 강입니다. 이름도 그렇고 지도에서 보면 무척이나 강폭이 넓어서 한강보다 큰 강물이 흐를것 같은데 실은 이름에 걸맞지 않게 개울물 정도의 물만 흐르고 있었습니다. 가뭄이라서 그런가 아무튼 걸어서도 건너 갈 만큼의 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저기를 그냥 통과하면 됩니다. 비자 보여주고 그런거 없습니다. 후아레즈에서 몇시간 들어가야 비자를 검사한다고 들었습니다. 아센시온에 다녀온 선교팀도 비자 검사없이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멕시코에서 나올때는 미국 세관 직원의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간단한 관세 신고하는 곳입니다. 신고 안하고 들어가다가 불신검문에 잡히면 많은 벌금을 내야 합니다.


저기를 지나갈때 녹색불이면 정차하지 않고 가면 되는데 빨간불이 켜지면 중앙에 있는 세관공무원에게 가서 차를 세우고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선교 용품을 싣고 있어서 인지 미국 형제 두명이 신고를 하러 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갔습니다.사진 몇장 찍다가 호기심에 뒤따라 갔습니다.




엘파소에서 도보로 걸어오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한강보다 훨씬 짧으니 가능 한것 같습니다. 세관의 자진 신고는 아주 형식적이였습니다. 멕시코에서는 국경을 통과하는 (특히 걸어서 넘어오는) 사람에 대해서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형제들이 하는 것을 보니까 위의 것을 써서 멕시코 세관 심사원에게 주니 이런 것 안해도 되는데 한다는 표정으로 한마디도 물어보지 않고 도장 찍어서 주었습니다. 멕시코의 도로를 달리는 밴의 창밖을 보면서 뭔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에서 보는 것과 같은 공원이 있는데 뭔가 정리가 안돼 있고 활력을 잃은것과 같은 그낌이 들었습니다. 도심속으로 들어 갈수록 5년전 10년전으로 시간이 자꾸 꺼꾸로 흐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차는 5분여를 달리더니 오후 6시55분쯤 깔끔하게 정리된 고아원에 도착했습니다. 고아원 전경입니다.

-노란 옥을 입은 빌선교사님과 오른쪽의 라비목사님-





고아원 이층 오른편에 위치한 남자 숙소입니다. 이층 침대입니다. 누우면 매트리스의 중간부분이 휘어져서 허리에는 안좋은 침대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나쁘지 않은 시설이였습니다. 간단히 침대만 찜을 하고 아래의 식당으로 모였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 아센시온팀이 떠나므로 가지고 온 짐을 나누었습니다. 선교팀은 세팀으로 나누어져서 활동을 했습니다. 후아레즈의 고아원을 베이스로 하고 있는 엘카미노 교회팀 (김병곤목사님)과 아즈테카 교회팀(김신영형제, 백승훈집사)이 있고 두시간 떨어져 있는 아센시온이란 곳에서 섬기게 되는 아센시온팀입니다. 아센시온팀은 그곳에서 머물다가 금요일 저녁에 돌아옵니다. 나중에 들었는데 그곳 상황은 열악해서 찬물로 샤워하고 식사도 자체적으로 해먹고 잠자리도 좁은 곳에서 함께 잤다고 했습니다. 후아레즈의 두팀은 고아원에서 식사를 준비해서 고아원 아이들과 같이 먹었습니다.

짐(선교용품)을 나눌때에 미국 형제 자매들과 서먹서먹했습니다. 우리 삼총사에게 도와 달라거나 같이 하자거나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때 먼저 뭐 할거 없냐 물어 보고 적극적으로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뭐 두말 할것 없이 분위기 좋아지고 아텀(Autumn)은 잘한다고 칭찬했습니다. 무엇을 했냐하면 하드(막대 아이스크림) 막대를 세고 그거 세 뭉태기로 나누고 양말 (Craft용) 세고 나누고 등등 입니다.




가지런히 나누어진 물품들입니다. 이것을 다 스틸빌 교회에서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VBS에 나누어줄 옷도 준비해왔습니다. 남자 아이들은 아래위 한 세트로 준비를 했습니다. 물론 스틸빌교회의 멕시코선교를 위해 모아진 헌금으로 구입했습니다. 진짜 준비해온 것 중에 감탄한 것은 여자 아이들의 원피스였습니다. (사진을 찍었는데 없네요.) 그 교회 할머니들이 모이셔서 일년동안 틈날때마다 손수 만든 원피스라는 말을 들었을때 가만히 머리가 숙여지더군요. 아마도 이것이 미국의 저력이 아닌가 쉽습니다. 우리가 보면 답답해 보일 정도로 천천히가는 것 같고 너무나 몸을 사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들이 한번 마음 먹은 것은 꾸준히 하는 변함없는 성실함은 참 배워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약 80벌의 옷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지난번 로미 아저씨가 그 모임을 이끄신 할머니의 건강이 안좋다고 말했는데 ... 건강하셔서 아이들에게 더 많은 기쁨을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건강이 허락하신다면 아마 지금도 내년을 기약하며 한벌 두벌 만들고 계시겠죠? . ‘하나님 그분들의 수고를 기억하여 주시고 하늘 나라에서 많은 상급으로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모두 정리하고 나니 저녁 8시였습니다. 어쩔 수없이 밖에 나가서 식사를 했습니다. 분위기를 보니 매번 도착하는 날은 밖에서 식사를 하는것 같았습니다.
미국 형제 자매들이 가장 좋아하는 식당은 ‘엘 타코 토테(El Taco Tote)’.


현대식 분위기로 미국과 별반 다르기 않은 분위기였습니다. 왼쪽의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은 신영형제이고 오른쪽의 오렌지색 옷을 입은 분은 주차를 도와주는 주차요원입니다. 붐비지도 않는 주차장인데 이런 분들이 꼭 계십니다. 이런분들이 조금이라도 도와주시면 팁을 주는 것이 예의였습니다. 동전을 드리는데 25센트(미국돈)미만으로 주는것 같았습니다. 메뉴는 다양했습니다. 하지만 가격은 미국에서 외식하는 비용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곳 물가로 생각하면 무척 비싼 식당입니다. 우리 삼총사는 뭉쳐서 페밀리 (Family) 메뉴를 시켰습니다. 회비 걷어서 같이 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신영 형제는 현금도 카드도 안 가지고 왔다고 했습니다. 뜨아~~~. 잃어버릴까봐 아예 지갑을 들고 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뜨아~~악. 저는 그냥 신영형제 뺄려고 했는데 목사님께서 말리셔서 끼워줬습니다. ^^.


저희가 시킨 메뉴입니다. 음료수까지 $20을 지불했습니다. 그래도 세트 메뉴이므로 싼편입니다. 그냥 라면에 밥 말아 먹으면 좋겠지만 선교팀의 일정에 적극 동참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의 팀이니까요.나중에 일을 하다보면 서로의 마음이 통한다는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름니다. 같이간 형제들과 나누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미국 형제 자매들은 이렇게 주어진 기회가 생기면 그곳에서의 일상을 최대한 즐기는 것 같아서 좋아보였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휴양지는 원산 앞바다의 명사십리라고 합니다. 그곳을 처음으로 휴양지로 삼은 분은 외국인 선교사라고 합니다. 그리고 일본에 가루지아와라는 최고의 휴양지가 있는데 이곳도 서양인 선교사의 별장입주를 계기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선교지에서 기회가 생기면 그곳에서 여러가지를 경험하고 우리의 문화를 보여주는 것도 의미있는 일인것 샅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9시40분에 숙소로 돌아오며 선교 첫째날의 하루를 마쳤습니다.

(다음날은 주일이므로 팀들이 섬기게 될 교회에서 같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후에는 VBS에 관한 노방 광고를 했고 오후 늦게 후아레즈의 명소(?)인 전망대에 갔었습니다. 그럼 다음편에서 뵙겠습니다.)